
균열
새벽 세 시, 용광로 앞에서 그는 국자를 놓쳤다.
정확히는 놓친 게 아니라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흔한 번째 종이었다. 마흔 번을 실패한 사람의 손은 마흔 번째 실패 앞에서 저절로 떨린다.
쇳물은 섭씨 천백 도, 주형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되돌릴 방법이 없다. 부으면 끝이다. 좋든 나쁘든.
"부어."
옆에서 아들이 말했다. 스물아홉, 이 일을 배운 지 오 년째. 아버지가 왜 국자를 못 드는지 알면서도 재촉했다. 새벽 세 시의 쇳물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는 스물세 살에 이 일을 시작했다. 종을 만드는 일. 절에 걸릴 범종, 학교 개교기념 타종, 드물게는 국가에서 발주하는 복원 작업.
서른 해가 넘도록 그는 하나의 소리를 쫓았다.
'맥놀이'라 부르는, 종을 쳤을 때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물결처럼 퍼졌다 가라앉았다 다시 살아나는 그 파동. 좋은 종은 친 뒤에도 오래, 아름답게 울다가 사라진다. 나쁜 종은 짧게 '탕' 하고 끝난다.
이론은 다 안다. 두께, 합금 비율, 종의 곡선, 용의 형상이 새겨진 음통의 구조까지. 성분표를 완벽히 맞춰도, 계산을 정확히 해도, 열에 아홉은 실패했다.
어떤 종은 소리가 째졌다. 어떤 종은 아예 울지 않았다. 서른 해 동안 마흔 개의 종을 부었고, 그중 사람들이 "이거다" 하고 무릎을 친 종은 세 개뿐이었다.
동료들은 진작 포기하라고 했다. "이제 그만 계산대로만 해. 팔십 점짜리 종도 종이야."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팔십 점짜리 종과 백 점짜리 종의 차이는 계산 밖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신라 시대 장인들이 남긴 종들, 천이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울리는 그 종들의 비밀은 문헌 어디에도 없었다.
쇳물이 주형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붉은 강이 어둠 속에서 흐르는 것 같았다. 아들은 숨을 참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사흘 뒤, 주형을 깨는 날. 흙과 재를 걷어내자 검은 표면의 종이 드러났다. 완벽해 보였다. 아들이 나무망치를 들었다. "치겠습니다."
땅— 소리가 퍼졌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았다.
파동이 겹치고 갈라지며 공기 속에서 계속 흔들렸다. 십 초, 이십 초, 삼십 초. 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손을 멈췄다. 소리가 아직도 울고 있었다.
그는 종에 가까이 다가가 표면을 손으로 쓸었다. 그러다 멈췄다. 손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표면 한쪽에 머리카락 굵기만 한 미세한 균열,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흠이었다. 성분 실수도 온도 실수도 아니었다. 쇳물이 식는 마지막 순간, 아주 미세하게 불균일했던 흔적.
이론대로라면 결함이었다. 불량이었다. 그런데 이 종만,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소리를 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른 해를 쫓아온 답이 '완벽함'이 아니라 정반대에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완벽하게 균일한 종은 소리가 한 번에 정직하게 끝난다. 아주 미세한 불균일, 아주 작은 흠결이 있어야 소리가 두 개의 진동으로 갈라지고,
그 두 진동이 서로 부딪히고 어긋나며 맥놀이를 만든다. 신라의 장인들이 몰라서 흠을 남긴 게 아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완벽을 향해 가다가, 완벽 직전에서 멈추는 법을.
아들이 물었다. "이제 이 균열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내신 거예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서른 해 동안 완벽해지려고 애썼는데, 결국 완벽함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알아본 거다."
그는 그 후로도 몇 해를 더 종을 부었다.
여전히 실패가 더 많았다. 하지만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완벽을 향해 곧장 걸어가던 사람이, 완벽의 문턱에서 스스로 멈추는 법을 배운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서른 해가 그에게 준 것이었다
— 정답이 아니라, 정답이 아닌 자리에서 멈출 줄 아는 손.
요즈음도 종종 생각해보는 한우물파다 잘되는 지름길 이란 참으로 힘든것인가 어려운것인가 안되는 거 억지로 하려는 건가 ㅎㅎ
세상 만사 요지경이다 누르면 튀어오르는 용수철이 되어 회복탄력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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